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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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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드 핀토는 1970년부터 1980년까지 포드에서 생산된 소형차로, 1960년대 후반 유럽 및 일본 소형차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70년 9월에 출시되었으며, 쿠페, 해치백, 왜건 등 다양한 차체 형태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의 설계 결함으로 화재 위험이 높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포드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도 비용 절감을 위해 재설계를 미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핀토는 안전성 문제로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으며, 기업 윤리, 제조물 책임, 소비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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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핀토 - [자동차]에 관한 문서
자동차 정보
일반 정보
이름포드 핀토
다른 이름머큐리 밥캣
포드 핀토
제조사포드
생산 기간1970년 9월 ~ 1980년 7월
모델 년도1971–1980 (핀토)
1974–1980 (밥캣)
조립 장소미국:
에디슨 조립 공장
샌 호세 조립 공장
캐나다:
세인트 토마스 조립 공장
디자이너로버트 에이드슈ン (1968년)
차종소형차
차체 스타일2도어 세단
2도어 세단 배달
2도어 스테이션 왜건
3도어 해치백
관련 차종머큐리 밥캣
포드 머스탱 II
구동 방식FR 레이아웃
차대모노코크
선행 차종포드 코티나 (수입)
후속 차종포드 에스코트 / 머큐리 링크스
엔진
엔진 종류"" Kent I4
"" EAO I4
"" L23 I4
"" Cologne V6
변속기
변속기 종류4단 수동
3단 C3/"Selectshift/Cruise-O-Matic" 자동
크기
차량 중량"" (1971년)

2. 역사

1세대 미국 서브컴팩트, 왼쪽부터: AMC 그렘린, 포드 핀토, 쉐보레 베가


1960년대 후반, 미국 자동차 시장은 폭스바겐 비틀과 같은 유럽산 소형차와 토요타, 다쓰산 등 일본 제조사의 소형차 공세에 직면했다. 포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처음에는 포드 유럽의 코티나를 수입해 판매했으나, 본격적인 미국산 소형차 개발에 착수했다. 경쟁사인 AMC는 AMC 그렘린을, GM은 쉐보레 베가를 비슷한 시기에 출시하며 미국 내 서브컴팩트 자동차 시장 경쟁이 시작되었다.

조랑말의 이름을 딴[6] 포드 핀토는 1970년 9월 11일에 출시되었다. 포드는 통상 43개월이 걸리는 개발 기간을 25개월로 대폭 단축하여 핀토를 시장에 투입했는데, 이는 이후 심각한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핀토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사용했지만, 파워트레인은 유럽 포드의 에스코트에서 가져왔다.

처음에는 2도어 세단 모델만 출시되었으나, 1971년 2월에는 "런어바웃(Runabout)"이라는 이름의 3도어 해치백 모델이 추가되었고, 1972년에는 2도어 스테이션 왜건 모델도 라인업에 합류했다. 핀토는 수입 경쟁차와 비교해 좌석이 차 바닥에 매우 가깝게 낮게 설계되었으며, 부드럽게 내려가는 패스트백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핀토는 머큐리 브랜드에서 밥캣이라는 이름의 자매 차종으로 1975년(캐나다에서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판매되었으며[139], 1973년 모델 체인지를 통해 소형화된 머스탱 II 역시 핀토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140]. 또한,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캘리포니아의 포드 딜러를 통해 터보차저와 디지털 미터를 장착한 "핀토 팡그라(Pinto Pangra)"[141]라는 키트카가 한정 판매되기도 했다.

핀토는 2000USD 이하의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초기 판매에 성공했으며, 경쟁 모델인 AMC 그렘린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며 총 300만 대 이상 판매되는 등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다[138].

하지만 핀토는 후방 추돌 시 연료 탱크 파열 및 화재 발생 위험이라는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는 개발 기간 단축과 원가 절감을 우선시한 결과로 지적받는다. 핀토는 여러 차례의 디자인 변경을 거치며 생산되다가 1979년에 사각형 헤드라이트를 적용하는 마지막 변화를 겪었고, 이듬해인 1980년에 전륜구동 방식의 후속 모델인 에스코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핀토는 스톡카 레이스의 베이스 차량으로 사용되어 활약하기도 했으며, 일본 시장에도 런어바웃과 왜건 모델이 수입되었다[138][142]. 또한 미국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미녀 삼총사》에서 등장인물 사브리나 던컨(케이트 잭슨 분)의 애마로 등장하여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 1. 개발 배경

1960년대 후반,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폭스바겐 비틀과 같은 유럽산 소형차와 더불어 토요타 코롤라, 다쓰 Datsun 510 등 일본 제조사의 소형차 판매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포드 팔콘, 쉐보레 코베어 등을 출시했지만, 이들은 6기통 엔진을 장착한 더 큰 차급에 속했다. 포드는 포드 유럽에서 생산하던 코티나를 수입하여 판매하기도 했으나, 본격적인 소형차 경쟁에 뛰어들 필요성을 느꼈다. AMC가 AMC 그렘린을, GM이 쉐보레 베가를 선보이며 미국 내 서브컴팩트 자동차 시장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포드는 1968년 12월 제품 기획 위원회의 권고와 1969년 1월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새로운 소형차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7] 당시 포드 사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는 무게 약 907.18kg 미만, 가격 2000USD 미만을 목표로 1971년형 모델 출시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핀토는 통상적인 자동차 개발 기간인 43개월보다 훨씬 짧은 25개월 만에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는 자동차 역사상 가장 짧은 생산 계획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개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부 과정이 병행되고 기본 설계가 조기에 확정되었다.[8][9][10] 아이아코카의 주도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사내에서 "리의 차"로 불리기도 했다.[11][12]

핀토는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지만, 파워트레인은 포드 유럽의 에스코트에서 가져왔다. 차체 디자인은 로버트 아이드순이 담당했다.[1] 조랑말의 이름을 따온[6] 포드 핀토는 1970년 9월 11일에 공식 출시되었다. 헨리 포드 2세 당시 포드 회장 역시 1971년형 핀토 런어바웃 모델을 개인 차량으로 소유하기도 했다.

2. 2. 생산 및 판매

1970년대 미국에서는 폭스바겐, 닛산, 도요타 등 수입 소형차의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서브컴팩트 시장에 진출했으며, 포드핀토를 개발했다. 핀토의 초기 계획은 1967년 여름에 시작되어 1969년 1월 포드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되었다.[7] 당시 포드 사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는 무게 약 907.18kg 미만, 가격 2000USD 미만을 목표로 1971년형 모델 출시를 지시했다. 핀토는 구상부터 생산까지 단 25개월 만에 완료되었는데, 이는 당시 업계 평균인 43개월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었다.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 일부 개발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기본 설계가 확정되기도 전에 기계 공구 제작이 시작되었다.[8][9][10][11] 아이아코카의 강력한 추진 아래 핀토 개발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며, 사내에서는 "리의 차"로 불리기도 했다.[12]

1970년 포드 핀토 디자인 제안


1971–1972 포드 핀토 세단 (트렁크 포함)


1973 핀토 런어바웃 (대형 해치 및 뒷 유리)


1970년 9월 11일, 포드는 "작고 걱정 없는 자동차"라는 슬로건과 함께 핀토를 공식 출시했다.[14][15] 처음에는 트렁크가 있는 2도어 세단 모델만 판매되었으며, 기본 가격은 1850USD로 GM의 쉐보레 베가보다 저렴했다. 이는 마쓰다 1200, 스바루 DL, 혼다 시빅과 같은 수입차들과 직접 경쟁하기 위한 가격 정책이었다.[16]

그러나 출시 직후 문제점이 발견되어 리콜이 진행되었다. 1970년 10월 30일, 출시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가속 페달 결함 가능성으로 26,000대가 리콜되었다.[20][21][22] 이듬해인 1971년 3월 29일에는 기화기 역화로 인한 엔진 공기 필터 화재 위험 때문에 1971년 3월 19일 이전에 생산된 핀토 220,000대 전체가 리콜되었다.[23][24][25]

머큐리 밥캣


포드는 핀토의 차체 스타일을 다양화했다. 1971년 2월 20일, 시카고 오토쇼에서 해치백 모델이 공개되었고,[17] 5일 후 "런어바웃(Runabout)"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2062USD였다.[17] 런어바웃 모델은 뒷좌석을 접으면 약 1078.87L3의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17] 1972년에는 해치 뒷유리 크기를 키웠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뒷부분 전체가 유리로 된 해치 옵션도 제공되었다.[19]

1972년 2월 24일에는 스테이션 왜건 모델이 추가되었다.[17] 전체 길이는 약 438.66cm이고 화물 적재량은 약 1713.17L3였다.[17] 이 모델은 포드가 1965년 팔콘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2도어 스테이션 왜건이었다. 고급형인 '핀토 스콰이어' 왜건은 컨트리 스콰이어처럼 모의 우드그레인 외장 트림을 적용했다.[26][27]

같은 해(1972년)에는 1년 한정판으로 '스프린트 데코 그룹' 패키지가 제공되었다. 흰색 외장에 파란색과 빨간색 줄무늬, 전용 휠과 타이어, 스포츠 미러 등이 적용되었고, 실내 역시 빨간색, 흰색, 파란색 조합의 시트와 고급 스티어링 휠 등으로 꾸며졌다. 이 패키지는 매버릭과 머스탱에도 함께 제공되었다.[28] 1973년에는 '스포츠 액센트 그룹'과 '럭셔리 데코 그룹' 등 새로운 외관 및 실내 옵션이 추가되었고, 슬롯형 단조 알루미늄 휠도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었다.[29]

핀토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모델을 바탕으로 인기를 얻었다. 1971년 1월까지 10만 대 이상 판매되었고, 1971년 한 해 동안 총 352,402대가 생산되었다. 판매량은 1974년에 정점을 찍어, 단일 모델 연도 기준으로 544,209대가 생산되었다.[18]

연도1971197219731974197519761977197819791980
판매 대수352,402480,405484,512544,209223,763290,132225,097188,899199,018185,054
총 생산량 3,173,491



머큐리 브랜드에서는 핀토의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인 밥캣을 1975년(캐나다에서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판매했다.[139] 또한, 1973년에 소형화된 머스탱 II는 핀토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140] 1972년부터 1973년까지는 캘리포니아의 포드 딜러를 통해 터보차저와 디지털 미터를 장착한 "핀토 팡그라(Pinto Pangra)"[141]라는 키트카가 5000USD 정도에 판매되기도 했다.

핀토는 여러 차례 작은 변화를 거치며 생산되다가 1979년에 사각형 헤드라이트로 디자인이 변경되었고, 이듬해인 1980년에 후속 모델인 에스코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총 생산량은 317만 대 이상이었다.[138]

일본에도 런어바웃(해치백)과 왜건 모델이 수입되었다.[138] 자매 차종인 머큐리 밥캣이 출시되면서 잠시 수입이 중단되기도 했으나,[139] 모델 수명 후반기에 다시 핀토가 수입되었다.[142]

핀토는 미국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미녀 삼총사》에서 케이트 잭슨이 연기한 사브리나 던컨의 애마(76~78년형 오렌지색 런어바웃 모델)로 등장하여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2. 3. 모델 변화



포드 핀토는 1970년 9월 11일 트렁크가 있는 패스트백 세단 한 가지 차체 스타일로 처음 출시되었다. 이후 몇 년간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 1971년: 2월 20일, 시카고 오토쇼에서 해치백 모델이 처음 공개되었고, 5일 후 "런어바웃"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2062USD였다.[17] 런어바웃은 접이식 뒷좌석을 갖추어 약 1078.87L3의 적재 공간을 제공했으며, 뒷 유리는 세단과 비슷한 크기였다.[17] 이후 포드는 해치백의 뒷 유리를 더 크게 재설계했다.[19]
  • 1972년: 2월 24일, 스테이션 왜건 모델이 출시되었다.[17] 전체 길이는 약 438.66cm이고 화물 적재량은 약 1713.17L3였다.[17] 이 모델은 1965년 팔콘 이후 포드가 처음으로 내놓은 2도어 스테이션 왜건이었으며, 2.0L 엔진과 앞쪽 디스크 브레이크가 기본으로 장착되었다. 모의 우드그레인 트림을 적용한 ''핀토 스콰이어'' 왜건도 함께 출시되었다.[26][27] 또한, 1년 한정으로 '스프린트 데코 그룹'이라는 외관 옵션이 제공되었다. 이 옵션은 흰색 바탕에 파란색 액센트와 빨간색 핀스트라이핑, 검은색 그릴, 색상에 맞춘 휠과 스포츠 미러, 빨강/흰색/파랑 조합의 실내 장식 등을 포함했다.[28]
  • 1973년: 더 많은 외관 옵션이 추가되었다. '스포츠 액센트 그룹'은 흰색 차체에 오렌지 또는 아보카도 색상의 투톤 액센트 페인트와 매칭되는 비닐 루프, 나무 무늬 인테리어를 특징으로 했다. '럭셔리 데코 그룹'은 밝은 외부 몰딩, 검은색 범퍼 러브 스트립, 나무 무늬 인테리어를 제공했다. 새로운 디자인의 슬롯형 단조 알루미늄 휠도 선택 사양으로 추가되었다.[29]
  • 1974년: 미국 연방 안전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앞뒤 범퍼가 충격 흡수 기능이 강화된 5 mph 범퍼로 변경되었다. 선택 사양이었던 OHC 엔진의 배기량이 2.3L로 커졌다. 머큐리 브랜드의 자매 모델인 머큐리 밥캣이 캐나다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스틸 벨트 타이어, 도난 방지 경보 시스템, 메탈릭 글로우 페인트 등이 선택 사양으로 추가되었다.[30] 1974년은 핀토 역사상 가장 많은 544,209대가 판매된 해였다.[18]
  • 1975년: 경쟁 모델인 AMC 그렘린에 대응하기 위해 2.8L V6 엔진이 선택 사양으로 추가되었다. 머큐리 밥캣이 미국 시장에서도 해치백과 스테이션 왜건 모델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 1976년: 소소한 스타일 변화가 있었다. 1974년형 캐나다 머큐리 밥캣에 사용되었던 에그 크레이트(달걀판 모양) 그릴과 크롬 헤드램프 베젤이 적용되었다. 1년 한정으로 두 가지 새로운 옵션 패키지가 제공되었다. '스탤리온' 패키지는 블랙아웃 트림과 검정색 투톤 액센트 페인트가 특징인 스포티한 외관을 제공했으며,[31] '런어바웃 스콰이어' 패키지는 런어바웃 모델에 스콰이어 왜건처럼 나무 무늬 비닐 외장을 적용한 것이었다. 또한, 기본 사양을 낮춘 저가형 모델 '핀토 포니'가 도입되었다.[32]
  • 1977년: 첫 번째 주요 스타일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헤드램프 부분이 뒤쪽으로 경사진 우레탄 재질로 변경되었고, 주차 램프와 그릴 디자인도 새로워졌다. 왜건을 제외한 모델들의 테일 램프 디자인도 수정되었다. 런어바웃 모델에는 처음으로 뒷 해치 전체가 유리로 된 '올 글래스 리어 해치'가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었다. 스테이션 왜건 모델에는 ''핀토 크루징 왜건''이라는 새로운 옵션 패키지가 추가되었다. 이는 작은 컨버전 밴처럼 꾸민 모델로, 둥근 모양의 측면 창문("버블 윈도우")과 선택 가능한 비닐 그래픽이 특징이었다.
  • 1979년: 두 번째 주요 스타일 업데이트가 진행되었다. 헤드라이트가 당시 유행하던 사각형으로 변경되었고, 수직 형태의 주차 램프와 더 높고 기울어진 새로운 디자인의 그릴이 적용되었다.
  • 1980년: 핀토는 후속 모델인 전륜구동 방식의 에스코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생산이 종료되었다.

3. 엔진

54hp (1972–1973)96lbft (1971)포드 EAO 직렬 4기통1971–1974122cuin100hp (1971)
86hp (1972–1974)포드 OHC 직렬 4기통1974–1980140cuin90hp (1974)
83hp (1975)
92hp (1976)
89hp (1977)
88hp (1978–1980)110lbft (1975)
121lbft (1976)
120lbft (1977)
118lbft (1978–1979)
119lbft (1980)V6 엔진포드 쾰른 V61975–1979170cuin97hp (1975)
103hp (1976)
93hp (1977)
90hp (1978)
102hp (1979)139lbft (1975)
149lbft (1976)
140lbft (1977)
143lbft (1978)
138lbft (1979)†마력과 토크 수치는 1972년형 모델 이후부터 자동차 마력 표시 기준 변경에 따라 순 출력(net horsepower)으로 표기되었다.


4. 안전성 결함 문제

포드 핀토는 출시 초기부터 심각한 안전성 결함 문제로 큰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초기 모델은 후방 충돌 시 차량 뒤쪽에 위치한 연료 탱크가 쉽게 파손되어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설계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152][153][154][147] 비평가들은 부실한 후방 범퍼와 연료 탱크 사이에 충격을 흡수하거나 지지할 만한 충분한 구조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아, 비교적 저속의 후방 충돌에서도 연료 탱크가 파손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포드가 이러한 설계 결함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 재설계에 드는 비용과 사고 발생 시 예상되는 손해 배상 비용을 비교하는 내부 비용-편익 분석 (소위 "핀토 메모")을 통해 결함 수정을 미루고 차량 판매를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74] 포드는 차량 한 대당 약 11USD[147]의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를 시행하는 대신 사고 발생 시 소송 비용을 지불하는 쪽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는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했다는 비판과 함께 포드의 기업 윤리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45][143][144]

결국 핀토의 안전성 문제는 실제 사고로 이어졌고, 197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후방 충돌 화재 사고는 그림쇼 대 포드 자동차 회사(Grimshaw v. Ford Motor Co.)라는 중요한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 소송 과정에서 포드의 내부 문제가 드러났고, 배심원단은 포드에게 기록적인 징벌적 손해 배상을 평결했다(이후 감액됨).[116] 또한 1978년 인디애나주에서 발생한 핀토 화재 사고로 3명의 10대 소녀가 사망하면서, 포드는 과실치사 혐의로 형사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인디애나 대 포드 자동차 회사). 비록 형사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125], 이 사건들은 포드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77년 잡지 마더존스(Mother Jones)가 포드의 내부 문서를 폭로하며 "핀토의 광기(Pinto Madness)"라는 기사를 게재하자 사회적 비난 여론은 극에 달했다.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와 자동차 안전 센터 등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압력 끝에,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조사를 거쳐 핀토의 연료 시스템 결함을 공식 인정하고 리콜을 명령했다. 포드는 결국 150만 대에 달하는 핀토와 자매 차량인 머큐리 보브캣을 리콜하여 연료 탱크 보호 장치를 추가하는 조치를 취했다.

포드 핀토 사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제조물 책임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145][146] 이 사건은 이후 기업 윤리 교육[143][144] 및 법학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1991년 영화 《소송(Class Action)》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또한 핀토 개발을 주도했던 리 아이아코카가 포드에서 해임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으며, 포드는 '바베큐 시트 제조사'라는 오명을 얻는 등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겪었다.[45]

4. 1. 연료 탱크 설계 결함

포드 핀토 초기 모델은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심각한 설계 결함을 안고 있었다.[152][153][154][147] 이는 연료 탱크가 단단한 리어 액슬과 후방 범퍼 사이에 위치하여 충격 흡수 공간이 부족했고, 후방 패널과 연료 탱크 사이에 충격을 지탱할 만한 구조 보강이 미흡했기 때문이다.[63][64] 비평가들은 부실한 후방 범퍼와 후방 패널, 그리고 연료 탱크 사이에 충격을 견딜 구조물이 없어,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차체 쪽으로 밀려들어가 문짝에 끼이면서 폭발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포드는 개발 단계의 충돌 테스트[65]와 1973년부터 접수된 저속 후방 충돌 후 화재 발생 현장 보고를 통해 이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포드는 차량 재설계에 드는 비용과 사고 발생 시 예상되는 소송 비용을 비교하는 내부 비용-편익 분석 (소위 "핀토 메모" 또는 Grush/Saunby 보고서)을 근거로, 결함을 수정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송 비용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74] 포드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제출한 이 분석 문서는 차량 전복 시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한 연료 시스템 개조 비용(모든 제조사의 차량 1,250만 대 기준, 대당 11USD, 총 1.37억달러)과 이로 인해 줄일 수 있는 사회적 편익(연간 사망 180명, 심각한 부상 180명 감소 추정, 총 4950만달러)을 비교하며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논리를 담고 있었다.

197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핀토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정지 후 후속 차량에 추돌당해 화재가 발생했고, 운전자 릴리 그레이(Lilly Gray)가 사망하고 동승자 리처드 그림쇼(Richard Grimshaw)가 심각한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와 관련된 Grimshaw v. Ford Motor Co. 재판 과정에서 포드의 전직 직원들이 회사가 결함을 인지하고도 생산을 강행했으며,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의도적으로 설계를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했다.[78] 배심원단은 포드에게 1.278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징벌적 손해 배상을 평결했으나, 이후 판사에 의해 350만달러로 감액되었다.

1977년 8월, 잡지사 마더 존스는 마크 도위(Mark Dowie)의 "핀토의 광기(Pinto Madness)"라는 제목의 탐사 보도를 통해 포드의 비용-편익 분석 문서를 폭로하며, 포드가 이윤을 위해 인명을 경시했다는 비판 여론을 확산시켰다. 이 기사는 핀토의 독특한 설계 특징 때문에 500명에서 900명 사이의 사람들이 화재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수치는 나중에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마더 존스 기사 발표와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 및 자동차 안전 센터의 압력으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1977년 8월 핀토 연료 시스템에 대한 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전 1974년 자동차 안전 센터의 리콜 청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된 바 있었다.[84] 1978년 5월 8일, NHTSA는 1971년식부터 1976년식 핀토 및 관련 모델인 머큐리 밥캣의 연료 시스템에 결함이 있으며, 이로 인해 중간 속도의 후방 충돌 사고 시 연료 탱크 손상, 연료 누출, 화재 발생으로 사망자와 화상 부상이 발생했다고 공식 판정했다.[95] NHTSA는 포드에 리콜을 명령했고, 포드는 결국 150만 대에 달하는 핀토와 밥캣 차량을 리콜하여 연료 탱크 보호 장치를 추가하는 개선 조치를 시행했다. 한편, NHTSA의 조사 과정에서는 리콜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반적인 충돌 테스트보다 가혹한 조건(예: 약 56.33km 테스트)을 적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98]

이 사건으로 포드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바베큐 시트 제조회사"라는 오명을 얻는 등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45] 또한 이 사건은 당시 포드의 사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가 회사에서 해임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포드 핀토 사건은 이후 기업 윤리[143][144]제조물 책임[145][146]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사례로 자주 언급되며, 영화 '소송'(Class Action, 1991)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한편, 포드 핀토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는 일부 오해와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149][150][151] 논란의 중심이 된 비용-편익 분석 문서는 본래 핀토의 특정 설계 결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 NHTSA가 추진하던 모든 차량의 전복 시 연료 시스템 안전 기준 강화 규제에 반대하기 위해 포드가 작성하여 제출한 문서였다는 지적이 있다.[74][147][148] 이 문서는 포드의 잠재적 불법 행위 책임 비용이 아닌 사회 전체의 비용을 다루었으며, 포드 차량뿐 아니라 모든 제조사의 차량 판매량에 적용되었다. 또한, 전 UCLA 법학 교수 게리 T. 슈워츠(Gary T. Schwartz)의 연구에 따르면, 핀토의 전체적인 치사율은 동급의 다른 서브컴팩트 차량들과 비교했을 때 평균적이거나 오히려 약간 나은 수준이었으며, 화재 관련 사고율 역시 평균 수준이었다고 한다.[135][136] 다만 후방 충돌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은 다른 서브컴팩트 차종에 비해 다소 높았던 것으로 분석되었다.[137] 슈워츠는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핀토를 "화재 함정"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장된 평가라고 주장했다.

4. 2. 포드의 대응과 은폐 의혹

포드 핀토 초기 모델은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설계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152][153][154][147] 비판가들은 부실한 후방 범퍼와 연료탱크 사이에 충격 흡수 구조물이 부족하여,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차체 쪽으로 밀려들어가 파손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포드는 이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설계 변경에 드는 비용이 사고 발생 시 예상되는 소송 비용보다 크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차량을 출시했다는 심각한 의혹에 휩싸였다. 포드의 이러한 결정은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큰 논란을 일으켰고, 이는 핀토 개발을 주도했던 리 아이아코카포드에서 해임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1977년, 진보 성향 잡지 마더존스는 포드의 내부 비용 편익 분석 보고서, 일명 "핀토 메모"(Grush/Saunby 보고서)를 입수하여 폭로했다. 이 보고서는 차량 전복 시 화재 위험 감소를 위한 연료 시스템 개조 비용(차량당 11USD, 총 1.37억달러)과, 이를 통해 예방 가능한 사회적 비용(연간 사망 180명, 중상 180명으로 인한 손실 추정액 4950만달러)을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74] 마더존스는 이를 근거로 포드가 이윤을 위해 인명을 경시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해당 기사에서 핀토 결함으로 500~900명이 화재로 사망했다고 주장한 내용은 과장된 수치라는 지적이 있다.

"핀토 메모"는 포드의 비윤리적 경영을 상징하는 문서처럼 알려졌지만, 후속 연구에서는 이 문서가 특정 핀토 모델 설계 결정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당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자동차 업계 전반에서 안전 규제 관련 비용 편익 분석에 활용되던 일반적인 방법론 중 하나였다는 반론도 제기되었다.[147][148] 이 분석은 포드 차량만이 아닌 미국 내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사회 전체 비용을 추산한 것이지, 포드의 법적 책임 비용을 계산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는 포드가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했다는 비판의 핵심 증거로 널리 인식되었다.

1972년 주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핀토 추돌 화재 사고는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 사고로 운전자가 사망하고 동승자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관련 재판에서 포드의 전 직원들은 회사가 결함을 인지하고도 비용 문제로 개발을 강행했으며, 의도적으로 문제를 방치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152][153] 배심원단은 포드에게 1.278억달러라는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평결했으나, 이는 추후 재판부에 의해 350만달러으로 감액되었다. 배상액 감소에도 불구하고 포드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바베큐 시트 제조사'라는 오명을 얻으며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소비자 단체인 자동차 안전 센터는 1974년부터 핀토의 리콜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청원했으나 초기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다.[84] 그러나 1977년 마더존스의 폭로 기사와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 등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여론이 악화되자, NHTSA는 재조사에 착수했다.

1978년 5월, NHTSA는 핀토의 연료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고 공식 판정하고, 1971~1976년형 핀토 및 1975~1976년형 머큐리 보브캣 모델에 대한 리콜을 명령했다.[95] NHTSA는 조사 결과 후방 충돌 화재로 2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이 사망자들이 화재 없이도 생존 가능했는지, 또는 당시 기술로 막을 수 없는 심각한 충돌이었는지는 명확히 규명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NHTSA가 여론 압박 속에서 리콜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반적인 충돌 테스트보다 가혹한 조건으로 핀토를 시험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98]

포드는 리콜을 통해 핀토의 연료 탱크 위치를 리어 액슬 위로 변경하고 연료 탱크와 범퍼를 강화하는 개선 조치를 시행했다. 이 사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 윤리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시켰으며[143][144], 1991년 영화 《소송》(Class Action)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4. 3. 관련 사건 및 소송

포드 핀토의 연료 시스템 설계 안전성 문제는 심각한 사고로 이어졌고, 결국 리콜, 소송, 형사 기소 및 대중적 논란을 야기했다. 이 논란과 관련된 사건들은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었다.[50] 핀토는 수많은 기업 윤리[51][52] 및 불법 행위 개혁[53][54] 사례 연구에서 인용되고 논의되었다.

핀토 초기 모델은 후방 충돌 시 후방에 배치된 연료 탱크에 충격이 가해져 심각한 화재나 폭발이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비평가들은 부실한 후방 범퍼와 후방 패널, 그리고 연료탱크 사이에 충격을 지탱할 구조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차체 쪽으로 밀려 들어가 폭발 위험이 커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포드는 이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설계를 변경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포드는 사고 발생 시 예상되는 소송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설계 변경 비용보다 저렴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더 존스 잡지는 포드가 작성한 내부 손익 보고서를 입수하여 공개했는데, 이 보고서에는 잠정적인 소송 비용을 차량 한 대당 11USD(현재 가치 약 57USD)로 추산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포드가 이윤을 위해 인간의 생명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소송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비용-편익 분석 문서는 저자들의 이름을 따 "Grush/Saunby 보고서" 또는 "핀토 메모"로 알려졌으며, 포드가 더 강력한 연료 시스템 규제 제안에 반대하기 위해 1973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제출한 것이었다.[74] 이 분석은 모든 제조사의 차량 전복 시 화재 관련 부상 및 사망에 대한 사회적 비용과 수리 비용을 비교했으며, 심각한 화상 부상 및 사망에 대한 가치는 NHTSA가 1972년에 계산한 값을 사용했다. 포드는 연료 시스템 개조 비용을 총 1.37억달러로 추정하고, 이를 통해 줄일 수 있는 사회적 편익(사망자 180명, 중상자 180명 감소)을 4950만달러로 추산했다. 1977년 마크 도위의 마더 존스 탐사 기사 "핀토의 광기"는 이 문서를 인용하며 포드가 이익을 위해 생명을 냉정하게 거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대의 연구에서는 이 "핀토 메모"가 실제 핀토 설계 결정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147][148]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에는 오해와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149][150][151]

포드 핀토의 후방 추돌 사고와 관련하여 약 117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107] 이 중 가장 중요한 두 건의 소송은 다음과 같다.

  • 그림쇼 대 포드 자동차 회사 (Grimshaw v. Ford Motor Co.): 1972년, 릴리 그레이가 운전하던 1972년형 핀토가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정지했다가 후속 차량에 추돌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연료 탱크에 화재가 발생하여 운전자 그레이는 사망했고, 동승했던 13세 소년 리처드 그림쇼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111][112] 1978년 2월, 배심원단은 포드에게 총 1.278억달러의 손해 배상을 명령했다. 이는 그림쇼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 1.25억달러와 보상적 손해 배상 284.1만달러, 사망한 그레이의 가족에 대한 보상적 손해 배상 66.5만달러를 포함한 금액이었다.[114] 이는 당시 미국 제품 책임 및 인신 상해 사건에서 역대 최고액이었으며, 자동차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최고액이기도 했다.[115] 이후 판사는 징벌적 손해 배상액을 350만달러로 감액했다.[116] 포드는 이후 관련 사건들을 법정 밖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117] 이 판결은 기업의 알려진 결함 방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졌으나,[118] 과도한 징벌적 손해 배상 결정의 사례로 비판받기도 했다.[120]

  • 인디애나 대 포드 자동차 회사 (Indiana v. Ford Motor Co.): 1978년 8월 10일, 인디애나주 오세올라에서 10대 소녀 3명이 탑승한 1973년형 핀토가 도로에 정차 중 후방에서 쉐보레 밴에 추돌당해 화재가 발생했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123] 이 사건으로 포드는 과실치사 혐의 3건으로 기소되었다. 이는 결함 있는 제품에 대해 기업이 형사 고발을 당하고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초의 사례로, 제품 책임법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124] 포드는 저명한 변호사 제임스 F. 닐을 선임하여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렸고,[127] 전직 NHTSA 국장 등을 증인으로 내세워 핀토의 설계가 동급 차량과 비교해 특별히 더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128] 1980년, 포드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125] 이후 민사 소송은 각 원고에게 7500USD를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129] 이 기소는 포드의 평판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130] 향후 포드가 제품 책임 소송에 대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134]


1974년 4월, 자동차 안전 센터(Center for Auto Safety)는 저속 후방 충돌 사고로 인한 사망 및 중상 사례를 근거로 NHTSA에 핀토의 리콜을 청원했으나,[84][85] NHTSA는 처음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84] 그러나 1977년 8월, 마더 존스의 "핀토 매드니스" 기사가 발표되고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와 자동차 안전 센터가 기자회견을 열고 청원을 재제출하면서 여론의 압력이 거세졌다. 결국 NHTSA는 1977년 8월 11일 조사를 시작했고, 1978년 5월 8일 핀토의 연료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결정을 포드에 통보했다. NHTSA는 1971년형부터 1976년형 핀토 및 1975년형부터 1976년형 머큐리 밥캣의 연료 탱크 설계가 후방 충돌 시 화재 위험을 높인다고 결론 내렸다.[95] NHTSA는 포드와의 협상 끝에 핀토 리콜을 지시했다. NHTSA 조사 결과, 1970년부터 1977년 중반까지 후방 충돌 화재로 2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이 충돌들이 화재가 없었더라도 생존 가능했는지, 또는 당시 기술 수준으로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후대의 연구에 따르면, 핀토의 전체적인 치사율은 당시 다른 소형차들과 비슷하거나 약간 나은 수준이었으며, 화재 관련 사망 사고율 역시 평균 수준이었다.[136] 다만 후방 충돌로 인한 화재 사망 사고에 한정했을 때는 평균보다 다소 높은 위험을 보였다.[13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토 사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제품 안전성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했으며, 소송(Class Action, 1991)과 같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4. 4. 리콜 및 사회적 영향

핀토 초기 모델은 후방 충돌 시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었다. 비판가들은 부실한 후방 범퍼와 연료탱크 사이에 충격을 흡수할 구조물이 없어, 충돌 시 연료 탱크가 차체 안으로 밀려 들어가 문짝에 끼이면서 발생하는 위험성을 지적했다.[152][153][154][147]

포드는 이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재설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77년, 진보 성향 잡지 마더존스(Mother Jones)는 포드 내부의 비용-편익 분석 보고서("핀토 메모")를 폭로했다.[74] 이 보고서는 차량 결함 수정 비용(대당 11USD)과 사고 발생 시 예상되는 사회적 비용(사망 및 부상 배상금 포함)을 비교한 내용을 담고 있어, 포드가 이윤을 위해 인명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 문서는 원래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제출된 것으로, 특정 차량 모델보다는 전반적인 안전 규제에 대한 분석이었으나[74], 핀토 사건과 결부되어 포드의 기업 윤리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45]

핀토의 연료 탱크 결함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그림쇼 대 포드 자동차 회사''(Grimshaw v. Ford Motor Co.) 소송은 후방 충돌 사고로 탑승자 1명이 사망하고 13세 소년 리처드 그림쇼(Richard Grimshaw)가 심각한 화상을 입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배심원단은 포드에게 250만달러의 피해보상금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1.25억달러를 평결했으나, 이는 이후 판사에 의해 350만달러로 감액되었다.[55] 또한 ''인디애나 대 포드 자동차 회사''(Indiana v. Ford Motor Co.) 사건에서는 포드가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막대한 소송 비용을 지출하고 '바베큐 시트 제조사'라는 오명을 얻었다.[55] 핀토 관련 화재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총 27명으로 집계되었다.

자동차 안전 센터(Center for Auto Safety)와 랄프 네이더 등 소비자 운동가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마더존스의 폭로 기사 이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1977년 8월 핀토의 연료 시스템 결함에 대한 조사를 재개했다. NHTSA는 1978년 5월, 1971년~1976년형 핀토와 1975년~1976년형 머큐리 보브캣의 연료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판단했다.[95] NHTSA가 리콜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반적인 충돌 테스트보다 가혹한 조건을 설정하여 테스트를 진행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98]

결국 포드는 1978년 6월 9일, NHTSA의 공식 리콜 명령이 내려지기 직전, 여론 악화를 우려하여 150만 대의 핀토와 머큐리 보브캣(세단 및 해치백 모델, 스테이션 왜건 제외)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이는 당시 자동차 역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이었다.[104] 포드는 리콜 이유에 대해 결함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연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야기된 대중의 우려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리콜 조치에는 연료 탱크 보호막 설치, 연료 주입구 연장 및 밀봉 개선 등이 포함되었다.[106]

포드 핀토 사건은 기업 윤리[51][52], 제조물 책임, 소비자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수많은 기업 윤리[143][144] 및 불법 행위 개혁[53][54][145][146] 관련 교육과 논의에서 주요 사례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1991년 영화 소송(Class Action)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49] 핀토는 타임[45], 포브스[44] 등 여러 매체에서 '역대 최악의 자동차' 중 하나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으며[45], 이 사건은 미국 자동차 산업 전반의 안전 기준 강화와 제조물 책임 관련 법규 및 제도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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